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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역사여행하는 성은입니다. 이번에 리뷰해볼 역사내용은 명량해전입니다. 최근 김한민 감독의 '노량 : 죽음의바다' 가 개봉을 앞두고 있는데요. 노량해전 전에는 바로 명량해전이 있었는데요. 노량해전이 있기전 어떤 내용이 있었는지 등장인물, 실제역사 내용 및 줄거리 등을 포스팅 해보겠습니다.
명량해전 등장인물
2014년에 개봉한 영화 '명량'에서는 김한민 감독이 맡았고, 주연배우로는 최민식(이순신 역), 류승룡(구르지마 역), 조진웅(와키자카역)입니다. 조연배우로는 진구(임준영 역), 이정현(정씨 여인역), 김명곤(도도 역), 권율(이회 역), 노민우(하루 역), 김태훈(김중걸 역), 오타니 료헤이(준사 역), 이승준(안위 역), 김강일(가토 역), 박보검(수봉 역) 을 맡았습니다. 마지막으로 특별출연 권율장군 역으로 남경읍 배우가 맡았습니다.
시대적 상황(명량해전 이전)
1. 백의종군과 칠천량해전 패배
정유재란 초기(1597년), 원균이 삼도수군 통제사로 임명되어 조선 수군을 지휘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전쟁 전에 '일본군을 단숨에 박살낼 것이라고 하였지만, 막상 통제사가 된 후에는 전쟁에 임하지 않는 등의 소극적인 모습이었습니다. 결국 권율은 원균에게 곧장을 때렸고 비판을 하였으며, 이를 못참은 원균은 부산을 공격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일본군의 대함대와 격돌하게 되자, 결국 패배하게 되었고 이로 인해 많은 수군이 피해를 받게 되었습니다.
그 당시에 이순신은 백의종군을 하고 있었습니다. 이순신은 나라에서도 버림을 받았지만, 그보다 더 충격적인 것은 어머니의 죽음이라는 소식을 들은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슬픔에도, 전라도로 내려가서 여러장수들과의 회의를 하고, 자문을 내리면서 많은 임무를 수행하였습니다.
결국, 원균이 이끄는 조선수군은 칠천량에서 대패를 하게 되었습니다. 전라 우수사 이억기 등의 사령관급 장수들은 전사를 하게되었고, 경상 우수사 배설만 생존하여 12척의 판옥선을 가지고 한산도로 도망을 쳤습니다.
2. 삼도수군통제사 이순신과 수군재건
칠천량에서 원균이 패배 이후, 선조는 다시 이순신을 삼도수군 통제사로 임명을 하는데요. 이순신은 흩어진 군사들과 군수물자를 모았으며, 남아있는 장수들(첨사, 만호, 지방관 급 장수들)을 중심으로 재편합니다. 또한, 도망친 배설의 판옥선 12척을 인수하게 됩니다.
선조는 수군을 해체하고 육군에 합류하기를 권하였지만, 이순신은 "신에게는 아직 12척의 배가 남아있습니다"라고 말하며 수군을 파하라는 제안을 거절합니다.
마지막으로 새로 임명된 전라우수사 안위가 1척을 끌고 이순신에게 합류하여 총 13척의 판옥선을 거느리게 됩니다.
3. 전쟁준비와 일본수군의 동향
조선 수군이 재건되는 동안, 일본 수군은 이미 조선바다의 재해권을 장악했다고 생각하며 약탈을 일삼고 있었습니다. 이 때문에 이순신은 필요한 병력을 확보할 시간을 얻었습니다. 병력을 재건한 이순신은 다시 전쟁준비를 하게 됩니다. 여러 최적의 장소를 물색했고, 그 결과 전투의 장소를 명량으로 결정하고 전남 진도 벽파진에 진지를 구축합니다.조선 수군의 재건 소식이 일본군에게 전해지자, 일본 수군은 대함대를 움직여 조선 수군을 찾아 나섰고 벽파진 바로 앞인 어란진에 진을 칩니다. 그러자 이순신은 병사들을 모아 그 유명한 말을 합니다. "병법에 이르기를 죽고자 하면 필히 살 것이고, 살고자 하면 필히 죽을 것"이라는 연설을 하며, 한사람이라도 좁은 길(울돌목)을 지키면 천명의 적도 막을 수 있다라는 것을 강조하였습니다.
명량해전(음력 9월 16일 / 양력 10월 26일) 역사 줄거리
수 많은 일본 함대가 조선 함대를 치기 위해 출발하자, 이순신은 빠르게 대응했습니다. 그는 울돌목(우리나라 바다 중 물살이 가장 쎄고, 폭이 300미터밖에 되지 않는 좁은 해협)에 함대를 배치하였습니다. 이순신은 이렇게 준비한 이유는 좁은 해협으로 일본 함대가 한꺼번에 다 들어갈 수 없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적장 구루시마 미치후사는 대선을 남기고 중선 133척만을 명량으로 들어가게 하였습니다. 이에 이순신도 이들을 막기 위해 울돌목 안으로 들어갑니다. 하지만 나머지 12척의 함대는 일본군의 함대가 두려워 명령을 듣지 않았습니다. 이순신은 대장선 혼자서라도 적을 막겠다는 각오로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명량 한가운데서 이순신의 대장선 1척과 세키부네 133척이 마주치게 됩니다. 병력 차이가 크지만, 좁은 명량 해협으로 인해 적이 아무리 많아도 판옥선 한척이 버티고 있으면 그냥 지나칠 수 없었습니다. 이순신은 홀로 세키부네 몇척을 상대하며 시간을 끌고 있었습니다. 이를 보고 뒤에서 지켜보던 두척이 나서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곧 판옥선 한척이 위기에 처하자, 이순신은 배를 돌려 이를 구출합니다. 이후 남아있던 10척의 판옥선도 합류하여 판옥선 총 13척이 명량해협을 틀어막게 됩니다. 그리고 시간이 흐르자 조선군에서 일본군쪽으로 조류(조선군에 유리한 조류)가 바뀌게 됩니다. 이로 인해서 공수가 완전히 역전되고, 조선함대는 이를 기회로 적선 31척을 파괴하고 적장 구르시마 미치후사도 처치하였습니다.
이제 조류도 바뀌어 조선 함대를 뚫을 수 없게 된 일본 함대는 후퇴를 결정하였습니다. 이렇게 조선 수군은 13척 대 133척의 해전에서 수적 열세를 극복하고 대승을 거두게 되었습니다.
결론
명량해전의 승리자 이순신장군과 그의 수군은 즉시 후퇴를 시작합니다. 그가 이렇게 행동한 이유는 조선수군의 건재함을 이미 보여줬고, 수군의 사기가 회복되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그 당시(양력 10월 26일)에 곧 겨울이 오면 적도 바다에 배를 띄울 수 없으므로, 이 시기까지만 시간을 벌면 되었던 것입니다. 이순신은 적으로부터 자취를 감추어 시간을 낭비하게 만들고자 했으며, 그 사이에 수군 병력을 충원하고 군수물자를 확보하려고 했습니다.
이렇게 쉽게 전라도 바다를 적에게 내어주어도 괜찮은 이유는, 이미 육지에서도 적을 무찔렀기 때문입니다. 일본군은 다시 조선을 침략하기 위해 전군을 동원하여 전라도로 쳐들어갔지만 직산전투에서 조명연합군에게 패하고, 명량해전에서도 이순신에게 패배하였습니다. 이로 인해 일본의 전라도 장악 계획은 실패하였습니다.
하지만, 일본군은 그의 고향인 아산을 공격하였고, 그의 막내아들 이면이 전사하였는데요. 이순신은 슬픔에 잠겼으나 마음을 추수리고 다시 전쟁을 준비하였습니다. 그는 임시 통제영을 설치하여 겨울을 보내며 수군을 재건하였습니다. 그러나 이후, 일본의 도요토히 히데요시가 병사르 하게 되었고, 이는 노량해전으로 이어집니다.
같이 보면 좋은 내용
1. 노량 죽음의 바다 등장인물(영화출연) 실제역사 요약